2006년 05월 29일
손이 손을 잡듯이.
오늘 모 강의에서 다른 조의 발표가 있었는데, 그들은 발표 도중에 《에반게리온》 영상을 빌려왔고, 서드 임팩트가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그 영상에서는 에반게리온 팬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곡, 〈Komm, susser Tod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가 흘러나왔다. 헌데 그 곡을 듣고 있는 도중에 나는 그 곡의 후렴 부분의 반주가 어느 곡의 일부와 닮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게 어느 곡인지 당장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그 뒤 다른 강의를 듣고 있는 도중에 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 곡의 제목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건 《비틀즈》의 명곡 〈Hey, Jude〉였고, 나는 이 두곡이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에서는 전혀 유사하지 않은 곡이라는 걸 상기했지만, 그럼에도 두 곡의 그 긴 플레이타임 중에서(익히 알려진 바대로 Hey, Jude는 7분 가까이 되는 플레이타임을, 그리고 우연처럼 Komm, susser Tod 또한 그에 비슷한 플레이타임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간주 부분의 반주는 아주 짧은 부분이나마 꽤나 유사한 느낌을 자아내는 닮음꼴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꼬집어 말한다면 〈Hey, Jude〉에서 나나나~나나나나~ 노래하는 부분의 멜로디가 말이다. '에게, 고작 그거?'라고 생각하실 텐데, 에게, 고작 그거다.
사실 닮든 닮지 않았든 그건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다만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는 많은 일들은 의외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시해주기도 하는 법이다. 나는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사실을 다시 생각해냈는데(물론 나 혼자만 흥미롭다면 어쩔 수 없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두곡의 전혀 상반된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가 과거의 사랑의 기억 때문에 오히려 절망 속에서 세상을 상실하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면, 〈Hey, Jude〉에서는 망설임을 극복하고 상대She를 받아들일 것을, 그것이 널 행복하게 할 것이라 노래한다.
In my heart of hearts / I know that I called never love again / I've lost everything everything / everything / everything that matters to me, matters in this world
나의 진실한 마음속에서 / 나는 결코 다시는 사랑을 구하지않았음을 알아요 / 나는 모든것을 잃었어요 / 모든것을 / 나와 관련된, 이 세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And anytime you feel the pain / Hey Jude, refrain /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s /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고통이 찾아들때면 / 헤이 주드, 그만 두라구. / 이 세상의 모든 짐을 너 혼자 짊어지지 마. /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 〈Hey, Jude〉
그런데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는 애니메이션의 감독이었던 안노 히데아키가 가사를 직접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게 아니라 결국 이 곡이 흘러나오는 서드 임팩트의 상징적 의미나 현실적인 단계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에반게리온의 피상적인 주제의식 정도를 생각해 보다면 사실 이 곡의 내용은 역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뭐, 꼭 그렇게 비약적인 해석을 가하지 않더라도, 이 두 곡 모두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문제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것이 연애이든, 결혼이든, 가족의 문제이든, 혹은 근본적인 자아와 타자, 세계 간의 입장에서든.
잘 알려진 바대로〈Hey, Jude〉는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 레논(Julian Lennon)을 위해 지은 곡이다.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과 신시아와의 이혼이 임박했을 때, 줄리안을 위해 이 노래를 지었다. 그리고 존 레논은 이 노래를 자신과 요코와의 결혼을 폴이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물론 줄리안에게 있어서 이 노래가 어떻게 들렸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쿨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는 척 하는 것보단, 너의 가까이에 있는 그녀, 혹은 그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여’라는 폴 매카트니의 메시지는 분명 쉽지 않은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는 세계가 서로 손을 잡기를 원했지만, 서로의 손을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폴 매카트니, 혹은 비틀즈가 노래했던 것들은 단순히 줄리안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아니, 그보다는 거기 바로 당신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리차드 해링턴(Richard Harrington)의 기사에서의 언급에 따르면, 2001년 조지 해리슨이 암으로 사망하기 10일전 링고 스타와 함께 병문안 차 그를 방문했던 폴 매카트니가 조지의 손을 꼭 잡았듯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거기 있는 바로 당신이)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서로의 손을 잡기를 바랐던 것이다.
매카트니는 자기 자신을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인생의 굴곡이란 굴곡은 다 겪어본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야 말로 자기 삶의 원동력이라 자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세상을 쿨하게 인정해버리고 오히려 세상과 그 모든 것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까지 무감각해지기 보다는, 당신이 바로 당신 앞에 있는 그, 그녀, 그들부터 받아들일 것을 충고한다. 그것이야 말로 당신이 당신 인생의 매순간의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암흑 속에서도 빛은 있습니다. 암흑 속에서도 선을 찾습니다. 이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내일도 즐기고 그 다음날도 즐기고……. 그런 날들이 결국 당신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전 이보다 더 심오한 인생철학을 알지 못합니다."
# by | 2006/05/29 19:39 | 聽 | 트랙백(3)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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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삶의 모습을 보고 느끼지만, 긍정의 힘은 그만큼 강한가봅니다.
맨날 저를 놀래키는 걸 보면. ^^
여하튼 가사도 좀 비슷한면이 있네용.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나는 쥬크온에서 비틀즈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절망적인지 모르겠군. 이래서 프루나 뒤지는 거지 궁시렁궁시렁
MayStorm님 // 저도 꽤나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 평소에 생각하는 거지만 자기반성이야 언제나 동반되어야 하는 거고, 역시나 중요한 건 실패 때문에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거겠죠.
뿌리님 // 제 마음도 종 잡을 수 없는데 말이죠. ~_~ 이거야 원, 최첨단 장비를 도입해도 수심 측정이 안 됩니다.
Ryth님 // 재밌죠? 아니면 아닌 거지만, 때때로 이런 우연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은 대단한 거죠. 정말 그래요.
마이너힐링포션님 // 이오공감이 축하할 일인지도 저도 잘 모르겠구요, 광고글 하나 달렸던 경험은 오래오래 간직할 것 같아요. 내 블로그에 광고글이 달리다니, 감격스럽네요.
포르티 // 응, 미녀는 쉽게 안 얻어진다. 비틀즈도 그런 점에서 동일하지. 수고하시오.
초콜릿님 // 그야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요? 닮았다고 하면 닮았고, 닮지 않았다고 하면 또 닮지 않았지요. 역시나 전 중요한 건 닮고 안 닮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자기 느낌이 가르켜 주는 방향을 따라가다가 얻은 그 다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죠.
헤이히님 // 저도 바흐의 곡의 제목을 따온 것이 아닐까 생각은 하고 있지만, 달리 음악을 비교해본 적은 없네요. ^^ 사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서요.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좋은 음악과 함께하는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