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살아야 겠어서.

드라이 아이스 - 김경주
-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은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 안의 야경(夜景)을 다 보여줘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들어가고 있다
귀신처럼.


ㅡㅡ

내 안의 야경을 다 보여줘버린 듯한 시기가 지나가고 있어서, 산 목숨으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럼에도 할 말이 없으니, 김경주 시인의 시라도 올렸네요.

문제는 그래도 어쨌든 살아야 겠어서. 세상엔 남의 삶도 죽음도 먹어 치우고 멀쩡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란 놈은 아직 무엇 하나 나 자신 하나도 해치울 요량이 못되어서.... 문제는 그래도 살아야 겠어서.

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아무 것도 읽지 않았던 긴 겨울이 다 지나가려합니다.

귀신이 채 다 되지 못해서, 산 목숨인 채로 또 봄은 다가오네요.

봄이 되어서, 지난 겨울은 어땠나요? 묻는다면.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 풀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설사 / 풀어도 이제는 쓸모 없다는 것을 / 무섭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 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 / 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고 적은 기형도의 문구를 빌려올 수 밖에.


by BarSur | 2009/02/19 23:15 | 읽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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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텔 at 2009/02/20 23:23
이제 봄 되니까 조만간 뵙시다 =)
Commented by BarSur at 2009/02/28 01:13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흐흐. 잘 들어가셨나요? 1시 넘어서 집에 오니 스타리그 재방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군요. 여튼 시간가는줄 모르는 수다의 연속이었네요. 오늘처럼 총각들이 접시깨는 수다모임은 계속 되기를 바라면서,다음번 회동은 꼭 총알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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