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9일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와 오레스트의 광기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는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그려진 그리스 비극 중 하나인 이피게니에의 이야기를 신고전주의 문학으로 변모시킨 희곡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의 이피게니에의 결말이 어디까지나 신들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그 운명이 좌우되고 있다면,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서는 고매한 이성을 지닌 인물들이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극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이성에 대한 믿음이며 대화로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극의 구조를 완결시키는 것이 괴테의 문학적 전략이기도 했다. 여성이며 이방인으로서의 이피게니에가 남성이며 권력자인 타우리스의 왕 토아스와 동등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곧 이성의 힘이며 인간에 대한 신뢰이고, 이피게니에가 보여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리나 이 작품에서 되짚어보아야 하는 인물은 이피게니에의 동생이며, 신들의 저주에 의해 근친살해의 저주를 받고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 인물 오레스트가 아닐까 싶다. 그는 신탁에 의해 그 자신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다이아나의 여신상을 훔쳐 달아나야 하는 인물이다.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의 2막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난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게. 그게 진실이야.
내 운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페스트에 걸려 쫓겨난 사람처럼 내가
가슴속에 은밀한 고토와 죽음을 품고 있는 거라네.
괴테는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페스트"라는 질병의 언급이다. 당연히 중세의 공포였던 페스트가 그리스 신화에는 등장할리 없는 것인데, 오레스트는 페스트라는 질병을 통하여 그 자신의 광기를 지칭하고 있다. 즉, 이미 광기는 광기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사회병리학적인 질병의 위치에 처해 있으며, 타자에 의해 명명됨으로서 그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광기가 자리잡는 것은 사람들이 광기를 멀리 물리침에 따라서이고, 광기의 양상과 차이는 빈번해지는 관심이 아니라 광기를 멀리하는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 미쉘 푸코, <광기의 역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오레스트는 결국 에피게니에와 함께 여신상을 훔쳐 달아나고, 추격대의 위기로부터 신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고매한 이성의 소유자들이 등장하는 괴테의 <타우리스의 에피게니에>에서는 에피게니에가 토아스 왕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고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 땅을 벗어나게 되는 것으로 변모한다. 더욱이 오레스트는 다이아나의 여신상이 아니라, 곧 이상적인 이성적 인물 에피게니아를 통해 그 자신의 광기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 믿게 된다. 그 변모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성의 위대한 승리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거꾸로 말해야 한다. 괴테의 시대에 이르러서 광기는 이미 그 자체의 진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신고전주의의 로고스적 사유를 통해 괴테의 <타우리스의 에피게니에>에서 광기는 광기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증상이며, 어디까지나 이성에 의해 치유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푸코가 그 계보학을 통해 증명하듯이, 이처럼 광기를 대상화하는 담론은 중세를 거쳐 본격적으로 거대한 수용의 논리를 통해 광기를 감시하고 정신병원을 비롯한 수용소로 몰아넣었다.
이 자유는 광인이 미치게 되는 이유이자, 광기가 아직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광인이 비(非)광기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광인은 자기 자신과 광인이라는 자신의 진실에서 벗어나면서, 진실도 결백도 아닌 영역에서 과오나 범죄 또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의 위험과 다시 만난다. 매우 근원적이고 매우 모호하며 매우 지정하기 어려운 출발과 분할의 시기에 광인으로 하여금 ‘총칭적’ 진실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 자유는 광인이 언젠가는 ‘자신의’ 진실에 사로잡히는 것을 방해한다. 광인은 자신이 광인이라는 진실 속에서 자신의 광기가 고갈되지 않음에 따라서만 미친 사람일 뿐이다.
cogito,ergo sum. 확고부동한 이성의 발견을 토대로, 인간이 대화를 통해 완벽히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고매한 이성의 논리는 오히려 이성과 언어로는 전해질 수 없는 종류의 진실을 은폐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잊혀진 광기의 목소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웅성거린다. 얼마간은 광인이며, 얼마간은 환자인 운명을 지닌 우리는 영원한 패배 속에서 다시금 우리 자신의 진실과 마주치게 되리라.
# by | 2009/03/19 18:20 | 읽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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