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22일
<슬럼독 밀리어네어>, 정답이 없는 또 하나의 퀴즈쇼
1.
영화는 최초에 묻는다.
"자말은 퀴즈쇼에서 2,000만 루피가 걸린 최종단계까지 왔다. 어떻게 왔을까?"
A : 속임수로
B : 운이 좋아서
C : 천재여서
D : 정해진 운명이었다.
이것은 당신에 참여한 퀴즈쇼이자, 삶의 질문이기도 하다.
2.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데리다의 말이지만, 결국 그 말을 따라가면 우리의 인생도 결국엔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먼지가 쌓이고 책장이 닳아버린 의문투성이의 이 책. 그리하여, 그 책 속에 적혀진 문장과 문장, 그 사이 행간의 거리처럼,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지난한 우리 삶의 인과관계의 단면에 대하여 우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그것이 당신 삶의 퀴즈쇼이기도 하다.
빈민가 출신의 자말이 남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퀴즈쇼의 마지막 단계에 까지 이르며 승승장구하게 된 이유. 그것은 단순히 친절하게 소개된 보기 안의 답안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소개된 정답 "정해진 운명"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 때문에 자말의 우여곡절 많은 이 삶의 텍스트를 우리 앞에 그 퀴즈들과 함께 병치하여 펼쳐놓았을까. 마릴린 로빈슨은 <하우스키핑>에서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이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을 요하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적었다.
삶이라는 사실, 이 텍스트야 말로 너무나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들인 것인데, 자말이 퀴즈쇼를 통해 이 모든 것에 답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그가 그 자신의 삶에 대하여 가장 열렬한 독자였으며 곧 자신만의 상상력을 지닌 창조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읽기"라는 행동은 언제나 다시 읽는 것이며 고쳐 읽는 것인데, 이 새로운 읽기의 연속 속에서 그는 마침내 그 자신의 삶을 창조해냈다.
3.
나는 최초에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가벼운 설정만을 듣고서 그것이 비카스 스와루프의 <Q&A>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극장에서 접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내가 알고 있는 <Q&A>는 전혀 다른 작품인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별개의 다른 두 개이거나, 결국에는 같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얼굴을 하고 서로를 거울처럼 투영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Q&A>에서 주인공 토머스가 지니고 있는 운명의 동전과 그 앞뒷면처럼.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으므로, 결국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읽어내는가 또한 때로는 운명같은 것이기도 했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이며 기독교과 힌두교와 이슬람의 이름을 모두 지닌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복잡한 이름은 자말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토머스가 읽어왔던 수많은 인물들과 그 텍스트들이 자말에게는 그 자신과 라티카를 읽는 일로 변했다. 그러나 토머스와 자말이 탄생한 도시 뭄바이처럼 혼성적이고, 탈식민주의적이며 조금은 페스티쉬적인 소설 텍스트가 헐리우드적인 감각으로, 어딘가 단순화된 러브스토리로 변화하였을지라도,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삶을 읽어야만 하는 이 과정에 대하여 암시해준다. 조금은 지난하게, 조금은 희망적으로. 물론 라캉의 욕망이론대로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 미끄러져 버리고 우리는 영원히 그 대상에 도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자꾸만 자밀에게서 멀어지는 라티카처럼.
이 영화의 답인 "운명"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처럼 쉽지 않은 우리의 삶을 읽어야만 하는 그 연유와 과정이야 말로 운명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당신의 삶을 열렬히 읽고, 이윽고 창조함으로서, 당신의 라티카를 만나는 일.
4.
소설 <Q&A>에서 토머스는 살림에게 말했다.
"봐, 살림. 너는 운명을 믿는다고 했지? 그럼 이 동전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짓자. 앞면이 나오면 도망가고, 뒷면이 나오면 여기 있는 거야. 좋아?"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동전은 앞면과 뒷면이 같은 것이었다.
일찍이,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난 사실 이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삶은, 우리의 삶은 이와 같은 말로 간단히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동전을 던져버린 이유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텍스트란, 그리고 삶이란 과정 중의 주체가 생산한 과정 중의 의미일 따름이니까. 퀴즈쇼의 답안처럼 정답이 주어지지 않음으로서, "슬럼독"과 "밀리어네어"의 역설처럼 그 간극을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의 삶의 답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도 않으며, 요약할 수도 없다는 것. 인간은 어찌할 도리 없이 불완전하다는 사실.
그리하여 오히려 토머스나 자말이 하지 못한 말들, 반드시 정답일 수 없었던 것들 속에 더 중요한 것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소설 속 행간을 읽고, 영화속 컷과 컷 사이, 침묵과 여백을 읽는 일.
당신은 당신의 삶이라는 텍스트를 열렬히 읽고, 이제는 그 새로운 의미의 문 앞까지 도달했다. 어떻게 왔을까?
D : It is written
(덧) 결국엔 "It is written"에서 숨겨져 있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을 텐데, 신(이것은 운명이었다), 혹은 감독(이것은 영화이므로, 감독의 창작이므로)의 2가지의 해답이 나올 수있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자말' 그 자신이며, '당신'이며, '우리'라고 보았기 때문에 "It is written"이란 답은 결국 '운명'이라는 말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감독의 코멘트에 따르면 '운명이었다'라는 점이 어느 정도 의도되었기 때문에 국내번역은 이를 따르고 있는 것 같지만.
# by | 2009/03/22 01:50 | 본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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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많이 보시나봐요. 저처럼 월례행사 정도로나 영화를 보고 그것도 대개는 별 감흥도 없다가 뜬금없이 쓰는 리뷰랄게, 뭐, 이렇습니다. 영화공부도 할 겸, 오리지날U님 이글루에서 영화정보나 얻어갈 참이에요. 괜찮겠죠? :)
글을 읽었으면 댓글 다는 것도 일종의 '요금 계산'이라고 생각해서ㅎ
정보는 원하는 것만 골라서 쏙쏙 얻어가세요~
근데 공부는 좀ㅋ 제가 뭐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