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날의 가을바람.



2006년 9월 7일
20대 (초)중반으로 달려가는 중. 쓸쓸한 대학생.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때때로 말이 많음. 우울에 빠질 때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쾌활함. 관대함. 담배 안 피움. 어지간한 자리가 아니면 술도 안 마심. 독서와 음악과 조용한 곳에서의 산책과 왕가위의 영화를 좋아함. 친구는 있음. 그러나 이 날은......

2006년 10월 25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문세 씨의 말을 들었다.
"2년이면 갓난 아이가 태어나 기다가 걷다가 뛰기까지도 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기다가 지겨우면 걷다가, 걷다가 지겨우면 뛰어도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사람이 그래야 하지 않느냐고.

2007년 9월 1일
우리의 여름날은 끝날줄을 몰랐다. 하나의 꽃화분 하나 제대로 길러낼 수 없을 만큼 우리 자신이 황폐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 밖에는 없었다. 어느 때라도 웃고 떠들고 노래할 수 있는 우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뿐이듯이.

2008년 2월 11일
추풍령에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은 험난한 고갯길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풍령에 그럴싸한 고갯길 같은 것은 없다. 현대의 추풍령은 이곳은 고속도로와 국도, 고속철도가 복합적으로 지나가는 말 그대로의 '길목'으로서 교통의 요지일 뿐이다. 추풍령이 秋風嶺의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몇 가지의 가설이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것은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이들 가운데 이 고개를 넘었던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가을 바람에 날리듯 낙방하고 말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그러나 나는 상상한다. 추풍령이란 단지 이곳의 유난히 강했던 가을 바람이 누구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그들이 낙방한 이유가 있다면 그들이 넘어온 고갯길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바람 때문이었으리라고.

2008년 8월 25일
몇 차례나 추풍령에 도달했지만, 한 번도 추풍령을 넘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사람들의 가슴 속의 흔들림을 짐작해볼 수밖에는 없었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포도축제한 한창인 이 고장으로 사람들은 곳곳에서 찾아오는데, 나는 이곳을 떠야야만 했으니,

그러나 헤어질 때는 아쉬움을 지우지 않았고, 정다운 웃음이 넘쳐났다. 두 차례 하늘로 떠오르는 내 가벼운 몸뚱아리와, 하늘에 닿을 것 같았던 너희들의 손짓과..... 아직 때이른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마음마음. 아, 나도 이제 하나의 험준한 고개를 넘은 것이구나. 그런 사실을 알 수 밖에 없었던 여름날.



PS. 늘씬한 민간인으로 다시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이 여름날의 가을 바람 속에서.

by 에트랑제 | 2008/08/25 16:20 | | 트랙백 | 덧글(20)

다녀오겠습니다.

마지막 3박 4일의 병영캠프.

말차를 조금 빨리 나왔더니 대기기간이 이렇게 길어지네요. ㄷㄷㄷ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도 2년을 있었던 곳이니까. 그사이에 만난 사람들, 얽히고 설킨 인연이 한둘이 아니니까.

천천히 2년간의 생활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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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의 새벽에 키스했다.
(중략)
깨어나니, 한낮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라는 것. 다른 모든 것이 될 수 있어도 꿈이 될 수 없다는 것.
먼 타향에서 보냈던 그 2년. 소중하게 되돌아보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by 에트랑제 | 2008/08/21 11:59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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