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7일
살고 싶다면, 납작 엎드리세요.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 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고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을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 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ㅡㅡ
1. 4. 19로 촉발되어 <풀>과 <폭포>를 통해 절정에 이르렀던 김수영의 혁명적 자아는 5. 16를 기점으로 하여 소시민적 자아로서 퇴행한다. 오늘날의 현실을 누가 감히 혁명적 자아로서 살아가겠는가. "이상을 유지하려면 땅에서 발을 약간 떼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런 이상이 세속화되지 않도록 말이다. 불행과 모욕에서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로 인해 당신의 영혼이 뿌리뽑혀 질식하지 않도록 하려면 말이다."라고 쓴 건 수잔 손택인데, 진정 두려운 것은 불행과 모욕으로부터 우리를 붙잡아두는 힘이며 우리를 끊임없이 세속화시키는 구조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 시도와 MBC 노조파업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진정 두려운 것은, 아예 혁명적 자아의 가능성까지도 말소하고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옹졸하게 욕하도록 만드는, 영원히 우리를 소시민적 자아 속으로 고착화시키는 힘이라는 것.
수잔 손택의 저 문구는 이제 다시 쓰여져야 한다. "살아가려면 땅에 철저하게 납작 엎드릴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이상이 혁명적이지 않도록 말이다. 불행과 모욕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로 인해 당신의 영혼이 쓸데없는 호승심으로 저들에게 반항하지 않도록 하려면 말이다."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야만 살 수 있다.
2. 좀 전까지 나와 한 몸이었다가, 툭 하고 떨어져서 떼구르 굴러가는 저 단추를 보며 그 지난한 역사를 생각해본다. 그 작은 면적 위에 알파벳으로 정성스레 새겨진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본다. 방향을 모르는 수레바퀴처럼 구르다 인세를 모르는 틈바구니에 끼어서야 비로소 거기 있었다고 말하는 그런 삶을 이야기해본다. 삶을 살았노라고. 쉽지는 않았다고. 그것이 삶이었다고. 새하얀 티셔츠 일렬의 배열 속에 저 혼자 다른 색 다른 모양으로 산다는 것의 치사함을 생각해본다.
ps. 살아있기는 합니다. 그게 살아있기는 한 건가요? 아무튼 살아 있습니다. 연말입니다. 잘들,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by | 2008/12/27 00:19 | 잡스런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